인스타그램을 지운 지 벌서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이런 흔해 빠진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제가 저도 싫습니다. 모두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깔기를 반복하겠지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해야만 하는 것들. 혹은 해야만 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것들. 부담을 느껴왔던 모든 일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내려 합니다.
해야만 하는 것들을 멀리 두고 생활하는 이유는 불안을 연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불안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불안 그 자체에 능수능란하게 올라타는 법. 불안이 파도라면 그 파도를 자유롭게 통제하는 서퍼처럼. 한 달째 실패 중이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안 속에 떠 있는 이유는 마땅히 박차고 일어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요.
오늘 편지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씁니다. 글을 이래야 한다, 보다는 나는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이 저를 괴롭힙니다. 나는 나은 사람이어야 해. 그 기준은 언제나 지금의 나.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나의 욕구를 필연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지요. 에세이는 이래서 더럽게 어려운 법. 그런데 에세이 말고 내가 쓸 수 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돈을 받고 글을 쓰면 글이 좀 나아질까요?
이틀 전에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북카페에 갔습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북카페를 전부 탐험해 보겠다는 목표로 카페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페에 도착해서야, 아니 정확하게는 중앙대가역 1번 출구로 걸어 나온 뒤 번뜩! 아 내가 여기 와본 적이 있구나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틀 전에는 내내 내가 어떤 이유로 그 카페에 갔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기억이 났네요. 성해나 작가가 <빛을 걷으면 빛>으로 한창 핫했을 때 북토크를 했는데 제가 한국에 있지 않다보니 카페 2층에서 온라인으로 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그제 오후 2시부터 오후 8시까지 카페에 머물렀고, 이곳에서 공부를 하다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쓰고 보니 우선 이 문장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는데 그가 '아는 사람'은 맞는가에 대한 팩트 체크, 또 우리가 '만났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팩트 체크가 필요하겠습니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녀의 친구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녀의 친구 J와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전공수업에서 만나 3년 정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가 점점, 당연하다는 듯 멀어졌습니다. 그녀는 J의 중국인 동기였는데 그녀와 내가 왜 4년째 인스타그램 친구인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J를 연결고리 삼아 인사를 나눴을 것이고, 둘 중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먼저 언팔로우를 눌렀겟지요. 그럼 또 다른 누군가가 덥석 또 다시 '팔로우'. 그렇게 맺어졌을 우리 인연은 너무 길고, 무의미하며 뜬금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그녀를 그제 카페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놀라운 역할은 서로를 모르는 서로가 서로를 약간은 알게 될 수 있다는 점. 그녀는 국제협력포럼에 자주 참여하였으며 (이 분야에는 지식이 전무해 국제협력포럼을 정당에서 주최하는지, 대학에서 주최하는지, 시의회에서 주최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지 못함) 요즘 시대 인스타그램에서는 보기 드문 우울전시자로 위쳇 모멘트(게시물)에는 대체로 외로움과 음주, 번아웃에 대한 화면을 꽉 채우는 자잘한 글이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한 그녀는 요즘 시대 인스타그램에서는 보기 드문 진짜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는데, 역시 그녀는 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습니다. 나는 그녀와 네 자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녀를 열심히 힐끔거리는 동시에 내 옆 사람의 몸에 내 얼굴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마주친다면 바닥난 사회성을 일순 끌어 올릴 수 있을지, 그 어색한 상봉의 장면을 상상할 수 없어 오늘 이곳에서 내 목표는 그녀를 마주치지 않기가 되었지요. 그녀를 관찰할 계획은 없었지만 자꾸 시선이 향했고 특히 화장실에서 내 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그녀의 노트북을 꽉 채우는 인터넷 강의 화면을 여러 번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걸까. 그녀도 나처럼 4학년 졸업예정자일까.
딱 한 번 눈이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우리에게는 아무 일이 없었고, 나와 그녀는 여전히 이렇게 모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인터넷 강의를 들었는데 문득 자리를 정리하고 가방을 메며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기분 상태가 조금 괜찮았더라면 그에게 반갑게 인사 정도는 건넬 수 있었을텐데. 그것은 서로를 귀찮게 하는 일이 됐거나, 외로움을 나눠지는 찰나의 대화가 됐을 지 모를 일인데.
오늘의 글은 이게 다입니다. 뭐라도 쓰기 위해 쥐어짠 저를 칭찬해주시고, 쓸 것 없는 지금의 사애를 응원해주시고 다음 주에도 메일함에서 제 글을 클릭해주세요. 제가 왜 이런 요구를 당당하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