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졸업 사진을 찍고 왔습니다. 달리 말해,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졸업 사진이 '으레' 갖춰야만 할 것은 갖추지 않은 사진입니다.
환한 미소, 치구 혹은 가족과 다정하게 서로를 껴안는 모습, 학사모 던지기, 학교 내 유명 포토 스팟, 하지만 역시나 다른 졸업자들의 다리나 팔, 머리가 어쩔 수 없이 걸려 찍힌 어색한 귀여움.
그런 것들이 없어도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이것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갈 곳이 분명하진 않지만 아무튼 가 보겠다는 의지와 다짐, 그런 것이 느껴집니다.
다만 제 이야기가 아니라 졸업이란 축제 속에서 고독함을 나눠진, 모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쏟아지는 축하 속, 축하의 해가 얼른 지기를 기다리게 되는 어정쩡한 마음, 곤욕스럽게 덩그러니 학교로부터 버려진 상황.
졸업이란 행사가 깔끔하게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 많을지, 있긴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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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졸업을 온전히 축하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마땅히 축하해야 할 것을 제때 축하하지 못한 사람의 어두움이 저에게는 늘 내재해 있습니다. 성과와 성취라는 단어는 점점 거창하게 제 몸을 불리고, 그 밖으로 떨어져 나온 과정이랄지, 고난 같은 건 쉬이 '아무것도 아님'으로 치부됩니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결국 저는 성취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처단할 뿐, 축하나 안도, 여유 같은 건 잊고 맙니다.
'축하받을 다짐'을 비로소 하게 된 건 선생님의 한마디 덕분입니다.
'아인씨, 고생했어요. 졸업을 하셨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말이에요. 축하해주세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졸업을 사랑하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이 졸업하는 자, 어른 되는 자의 마땅한 숙제라도 된다는 듯이, 졸업을 축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의 과정'이라며. 나는 한 걸음만, 딱 그정도만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로 학교 밖을 걸 나가려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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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으레" 해야 할 일은 단연 인스타그램 업로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시로 깔았다가 지웠다가 몇 주만에 인스타그램을 드디어 한번 다운로드 받아봅니다.
도넛처럼 생긴 다운로드 버튼이 점점 초록색으로 채워지는 동안 나는 심장이 빠르게 뜁니다. 이것을 열면 여기엔 또 얼마나 많은 사랑과 행복이 성취와 성장이, 현현할까, 나는 부러움을 견디다 분노와 질투를 느끼고, 그에 따른 죄책감을 동반할 내 심리적 상태가 두렵습니다.
나의 못생긴 민낯이란 이 다운로드 버튼만 없다면 사그라드는 법.
<정말로> 눈을 질끈 감고, 인스타그램에 입장합니다. 오른쪽 상단의 플러스 버튼을 재빨리 눌러, 나의 사진과 나의 장면과 졸업이란 사건만 공유하고, 헐레벌떡 사라지기로 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고르는 일부터 고역입니다. 어쩐지 어떤 사진은 행복한 '척', 어떤 것은 사랑받는 '척', 또 다른 것은 감성적인 '척'하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의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만 이 모든 것은 사실 '척'이 맞으므로 나는 그 어떤 사진도 나를 대변할 수 없다는 다분히 현대인척인 발상을 하게 됩니다.
30여분의 망설임 끝에 감성적인 척 - 예쁜 척 - 행복한 척 사진을 순차적으로 세 장 배치한 뒤 마지막 한 방으로 꽃다발 많이 받은 척 사진까지 첨부합니다.
됐어됐어 이제 멘트만이 남아 있다!
나의 참을성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해보기로 합니다.
졸업식 게시물 멘트의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는 내용, 학교에 감사하다는 내용, 사회로 "가보자고"류의 내용, 그도 아니면 꽃다발 정도의 이모지로 대체하는 멘트.
나도 남들이 마땅히 하는 방식으로 멘트를 남겨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요. 학교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많고, 그들에게 감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꼭 그 인사를 인스타그램에, 공개적으로 해야 합니까? 아주 직접적으로 전화, 혹은 카카오톡으로 감사를 전하기로 나는 다짐합니다.
학교에 감사하다는 내용을 남기는 것에도 회의적입니다. 분에 넘치게 좋은 학교에 재학한 것은 사실이나, 나는 학교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돈을 냈고,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교육을 받았고, 경험을 쌓았으며, 중국사회의 학벌주의를 부여하기 위해 뻣뻣한 용지로 딱 한 장 인쇄된 졸업장을 손에 넣고 기뻐했습니다. 웃으며 사진도 찍었고, 그 뿐입니다. 나에게 안전한 공동체도, 놀라운 학문의 장도 아니었던, 그저 통과와 불통과가 사방팔방에 날아다니며 나를 채찍질하고, 정상성을 강요하는 그런 공간이었지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런 학교에 대한 감상을 뭐 굳이 이 '인스타그램'에 솔직히 쓸 필요는 없고.
결국은 멘트를 고민하다 말고 인스타그램 피드 업로드를 포기합니다.
졸업 축하의 한 과정을 미완으로 남겨둔 나의 심정이란.. "망했다."
대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만 졸업사진과 짧은 멘트를 올리고, 미처 눈을 감지 못해 플러스 버튼 바깥으로 튕겨 나와 마주한 인스타그램 세상, 역시 그곳에는 졸업 관련 콘텐츠가 과잉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대학 동기들과 각기 다른 학교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
나는 얼른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하며, 내가 잘한 거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리려던 사진 중 몇 장을 선별해 보냅니다. 마음이 훨씬 가볍고 좋습니다.
"저 졸업했어요!"
말하면 다들,
축하한다고, 고생했다고 해주는 1:1의 축하를 마음껏 누리며 나 또한 나의 졸업을 축하해주게 됩니다.
*
졸업 후 하루가 흐른 지금, 저는 졸업한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생이란 신분은 늘 나를 축소시키고,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요즘은 대학생도, 백수도 아니고 글쟁이 혹은 유튜버 정도로 스스로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나는 글쟁이에요" 말해본 적 없지만 그런 용기를 지금은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라는 답답한 수식어를 벗어 던지고, 나는 비로소 조금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 듭니다.
소속이 없다는 점도 학벌에 기대는 대신, '나'로 홀로 서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느낍니다.
조금 더 볼품없고, 허름할지라도 나는 지난 24년간 살아온 실패와 성취, 그 안정과 인정에서 벗어나 비로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B씀 |